생활공예 한지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에요. 달빛을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소 한가득 길어 올려지는 거예요.”
임권택 감독의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의 한 대사입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주사고 보관본을 전통 한지로 복원하는 사업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는 한국의 정서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지 공예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한지의 숨결, 그리고 형태와 용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한지에 수 놓은 듯한 화려한 문양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웅장함과 섬세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전통 공예품을 위의 대사처럼 ‘한 가득 담을 수 있는 마음으로 보듬을 때’ 우리 선조들의 혼과 얼이 그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작품들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준비 되셨나요?
한지는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 생활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최고의 장식품이자 생활용품이었습니다. 특히 닥나무의 질감에 식물의 뿌리, 잎, 줄기 등에서 얻어진 천연염료로 색을 입혀 만든 수공예품에는 우리 선조들의 멋과 지혜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약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한지를 여러 겹으로 포개어 붙이고 기름을 먹이거나 옻을 칠하면 대를 물려도 상하지 않을 만큼 견고할 뿐만 아니라 매우 가벼워서 사용하기 편리하고,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따뜻한 정감을 줍니다.
나무나 도자기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기물이나 장식품을 모방하거나 대용하면서 만들기 시작하였지만, 비교적 만들기 쉽고 비용도 적게 들며 깨지지 않고 다루기 편리하여 부채, 베개, 동고리, 모자, 반닫이, 우산 등 여러 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쟁을 겪으며 소실되기도 하였고 의식에 사용되었던 기물은 의식을 치룬 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만드는 이의 마음과 손길이 그대로 전해지는 우리의 전통 한지공예!
단순하게 기물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양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였고, 여러 가지 자연의 빛깔 그대로 담아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도 하였답니다. 한지를 활용해서 공예품을 만들 때 제작 기법에 따라 그 쓰임도 매우 다양합니다. 작품을 살펴보면서 조형미를 감상해보고 선조들의 지혜와 풍취 그리고 삶의 멋을 엿볼까요?
지장공예의 지장紙裝은 ‘종이로 장식한다’는 의미로 두꺼운 종이나 목재 골격으로 기본 형태를 만들고 안팎으로 한지를 여러 겹 발라 만들었습니다. 종이만 발라 콩물이나 감물, 옻칠 등으로 마감하기도 하고 그 위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마무리하기도 하였습니다.
지장 공예 표면 장식 기법으로는 전지 기법, 서화 기법, 능화지 기법, 후지 기법, 줌치 기법 등이 있습니다.
① 전지 기법
전지 기법은 색지로 옷을 입히고 여러 가지 무늬를 오려 붙이는 기법으로 지장 공예의 기법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문양을 한지에 그린 후 선을 따라 가위나 조각칼로 오리고 바탕이 되는 면을 한지로 바른 후 작품에 성격에 맞게 색지를 나누어 붙여 오려진 문양을 붙였습니다.
전지기법은 다시 오색전지기법과 양각전지기법으로 나뉘는데, 오색전지기법은 미송이나 오동나무 또는 종이를 여려 겹으로 발라 상자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청색, 홍색, 황색, 녹색, 흑색의 갖가지 색종이로 뚜껑의 네 귀퉁이와 윗면을 대칭 마름모꼴로 분할해서 색이 중복되지 않게 붙이거나 다양한 문양을 잘라 붙여 표현하였습니다. 아름답게 물들인 색지로 만들어진 공예품은 실용적인 생활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성과 더불어 장식적인 효과를 갖추고 있어 색채의 아름다움과 조형미를 잘 갖추고 있습니다. 더불어 부드러운 질감과 다양한 색상의 조화가 여성들의 정서에 부합되었고, 여성들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재료적 특성과 예술 제작 기법 때문에 색실 상자, 색실첩, 족두리, 반짇고리 등 여성들이 생활용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양각전지기법은 기물에 골격을 만든 뒤 한지로 여러 겹 붙인 뒤 테두리와 문양을 1cm정도의 한지로 오려붙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구한 말 이전의 문양지는 한지를 8~10장 정도 붙인 후에 그 위에 오려붙였으나 양지가 들어온 시기부터는 합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양각기법은 서류함, 고비, 필통, 갓집, 지통 등과 같은 남성용품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② 서화 기법
한지에 당채나 담채, 먹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후에 기형 위에 발라 장식하거나 한지에 천연 염료로 색색으로 물들여 여러 겹으로 붙인 종이, 오동나무, 미송 등으로 만든 골격에 바른 후 색지를 덧바르고 골격위에 민화와 당초문 등의 문양을 그려 넣는 기법입니다.
③ 능화지 기법
능화판은 책의 겉장을 장식하는 방법 중 각종 무늬를 새겨 눌러 책의 겉장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판목을 뜻합니다. 능화지 기법이란 이 능화판 위에 양각 또는 음각으로 문양을 새기고 밀랍을 바른 뒤 문양을 색지에 도드라지게 새기는 기법으로 연꽃, 필보, 능화, 귀갑문, 길상문, 화자문 등 그 종류가 다양하였습니다.
④ 후지 기법
한지를 여러 겹 붙여 두껍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한지를 여러 번 접어 갖가지 형태의 기물을 만들고 표면에는 요철이나 문양을 넣어 장식하였습니다. 후지 기법으로 만든 기형의 표면에 옻칠이나 색칠을 하면 가죽과 같은 질감이 됩니다.
⑤ 줌치 기법
‘주머니를 만드는 기법’이라는 뜻이며, 여러 겹의 한지에 물을 묻히고 구겨 만들어 종이의 면을 오톨도톨하게 만드는 것으로 다른 종류에 비하여 대단히 적은 수의 유물이 남아있습니다. 연, 부채, 탈, 무속이나 불가 의례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쌈지, 귀주머니, 지갑, 서류첩과 같이 옷과 지갑류를 만들 때 질감을 견고하고 주름이 잘 가지 않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지승 공예는 종이를 좁다랗고 길게 잘라 비스듬히 비벼 꼬아 끈으로 만들어 여러 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엮어서 만드는 것 입니다. 종이나 삼베, 헝겊 등으로 꼬아서 만든 실을 우리말로 ‘노’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승의 순수한 우리말은 ‘노로 엮은 것’이라는 뜻으로 ‘노엮개’입니다.
꼼꼼하게 얽힌 선들이 아름다운 무늬로 완성되는 지승 공예는 짜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무늬가 나오기 때문에 굴곡이나 변화를 주어 형태를 만들기도 하였고 ‘노’에 여러 가지 염색을 하여 화문석처럼 문양이나 글씨를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꼬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종이를 씨실과 날실의 형태로 문양을 짜고 마무리가 되면 풀칠을 하여 완전히 건조시킨 후 엮어서 만드는 방법과 삼베나 두꺼운 종이로 일정한 틀을 먼저 만든 후 표면에 꼬아 두었던 지승을 풀로 붙여 다양한 문양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한지의 먹물 글씨를 바깥으로 드러나게 꼬아 멋스러움을 더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용도나 특성에 따라 염색을 하거나 칠을 하여 종이의 질감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였는데, 주칠(朱漆)이나 흑칠(黑漆) 등 옻칠을 하여 보존성을 높이기도 하였지만 민간에서 옻은 일반인이 다루기도 어렵고 옻칠을 사용하는 것을 나라에서 규제하였기 때문에 함부로 쓸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시칠이나 들기름칠을 하여 방수성과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옛날에는 종이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가까이 하던 선비들이 글씨를 연습하던 종이를 잘게 오려서 꼰다거나 글을 읽다가 심심하면 헌책을 1장씩 뜯어서 꼬거나, 버려진 종이들을 잘 모아두었다가 창호를 바르는데 사용하거나 지승기법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기 때문에 지승기법을 만든 생활용품은 짚풀로 만든 것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책을 찢어 만드는 것이 유행하여 집집마다 서책들이 도난당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소중한 책들이 훼손되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때는 지승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금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존하는 지승공예품은 책상, 필통, 화살통 등과 같은 남성용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둥우리, 항아리, 소반 등 농가의 기물을 비롯하여 필통, 바구니, 망태, 상, 요강, 옷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쓸모없다고 버리는 것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솜씨를 발휘하였고, 어떤 것들은 예술성까지 지니고 있어 역사적인 문화유산으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가옥의 문에 쓰였던 창호지는 보통 1년에 한 두번 바꿔붙이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 창호지는 모두 한지였으므로 버리는 종이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 종이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이를 잘게 찢어서 물에 풀어 밀풀과 섞어 잘 치대면 종이죽처럼 만들어 만들고자 하는 그릇 모양의 틀에 조금씩 붙여가며 말리고 또 덧붙여 만들었습니다. 이때 들기름이나 콩기름을 먹이거나 칠을 하여 충해를 막고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탕에 색지를 바르고 무늬를 장식하여 꾸미기도 하였습니다. 대게 그릇이 귀한 농가에서 과반, 함지박 상자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거나 종이탈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지호공예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며, 최근 이를 응용한 닥종이 인형은 얇은 한지에 풀을 발라 잘게 찢어 붙여 만드는데, 특유의 소박함과 투박한 미감으로 한국인의 순수한 모습과 동심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조형예술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등화구는 밤 시간에 어둠을 밝혀주는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이 가운데 표면에 종이를 발라 만든 등을 지등(紙燈)이라 하며 철, 놋쇠, 대나무, 목재 등으로 골격을 만들고 표면에 종이를 발라 사용하였습니다. 조족등은 휴대용으로 만들어진 등기구로서 조선시대 순라군이 사용하였습니다. 순라군은 도둑이나 화재를 막기 위해 밤에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순찰을 돌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경찰이나 경비원들이 손에 손전등을 들고 다녔듯이 옛 사람들은 이 조족등을 들고 다녔습니다. 조족등은 사방 어느 곳으로 비추어도 그 안에 있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작되었으며 어두운 밤길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습니다.
한지를 여러 겹 접거나 붙여 일정하게 잘라서 생화 대용의 꽃 모양을 만드는 공예입니다. 한지는 다루기 쉬울 뿐만 아니라 염색 등으로 다양한 색채표현이 가능하고 크기 조절이 용이하기 때문에 궁중 잔치나 사찰의 꽃 공양, 무속인들의 의식에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또한 장원급제자에게 하사하는 어사화나 상여에도 많은 종류의 지화로 지장하였으며 점차 왕실과 사대부 그리고 평민에 이르기까지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습니다.
특히 전통공예로서의 지화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불교 전통 의식인 영산재(무형문화재 50호)나 수륙재 및 천도재 등 각종 재의식 행사에서 불전을 장식하여 부처를 공양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으며, 무속에서는 이 꽃이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신화(神花)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장인 정신은 물론 실용성까지 겸비한 한지공예!
양반집 규수들과 아낙네들이 사용하는 규방 공예품부터 서민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감각에 의해 실용적으로 고안되고 다듬진 생활 공예품까지, 그 순박함과 정감 그리고 정취를 잘 느껴보셨나요? 이처럼 한지공예는 우리의 문화 예술을 대변하는 전통 공예답게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