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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공예 명인

문화재청에서는 전통한지의 올바른 보존과 전승을 위해 전통 한지제조 분야에 20년 이상 종사한 장인 중, 전통 한지 제작 기능을 원형대로 체득•보존하고 실제 능숙하게 재현할 수 있으며 전승계보가 뚜렷한 장인을 중요무형문화재 제 117호 한지장(韓紙匠)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2005년 9월 23일 류행영 한지장이 처음으로 지정되었으나 2013년에 별세하였고, 2010년 2월 11일 지정된 장용훈, 홍춘수 한지장이 현재 보유자로 남아있습니다.

류행영 한지장

류행영 한지장은 전통한지 제조법을 부친에게 배워 한지를 제작하던 김갑종 선생에게 전통한지 제조법을 전수받아 55여년 동안 전통한지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전통한지 제조법을 전수받고 1959년 전주제지공업사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전남 장성군 장성읍 교정리에 위치한 제지공장과 마석 소재 주경환 선생이 경영하던 한지공장에서 일하다가 1973년에는 그 공장을 인수하여 간판을 영신제지로 바꾸고 자신의 주관으로 한지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장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남 의령으로 이주했다가 부산에 있던 닥나무 수출회사인 삼백물산에 입사해 한동안 근무했습니다.

1982년 안동대학교 권기운 교수의 지원으로 안동 소재 옹천제지를 경영하다가 1987년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소재의 태봉암 아래에 전통한지 연구소 겸 공방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2005년 9월 23일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으로 인정되었고 이후, 건강이 여의치 않아 더 이상 현장에서 활동하기는 어려워 2008년 12월 30일 명예보유자로 인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류행영 한지장의 한지는 일반적인 한지의 특징을 고르게 갖추었음은 물론 특유의 기술적 성취를 이루어 얇은 박엽지에서 두터운 후지까지 높은 품질의 종이를 재현해 냈습니다. 순백의 종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다채로운 색지를 제작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왔습니다. 쪽, 소목, 황벽, 홍화, 치자 등 염재가 선생이 즐겨 쓰던 색재료입니다. 또, 섬세하기로 이름난 옥춘지를 제작할 수 있는 이도 류행영 선생이 유일합니다. 옥춘지는 평량 8g/㎡을 넘지 않을 만큼 정밀한 종이지만, 질기고 기능적이어서 최상품에 해당합니다.


2013년 별세한 류행영 한지장, 60여년을 오로지 전통한지의 복원과 전승이라는 외길에 종사하면서 온갖 어려움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뜻을 굽힌 적이 없으며 살아생전 한지의 명맥을 유지하고 만드는데 평생을 바친 진정한 장인입니다.

장용훈 한지장

장용훈 한지장은 100여년 전 겨울 농한기 때 질 좋은 닥나무를 거둬 한지를 만들기 시작한 조부와 그 조부를 따라 한지를 만드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으신 부친 장세권 선생에 이어 3대째 한지 제작을 계승하고 있으며 장용훈 선생의 아들 장성우 전수자가 4대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장용훈 한지장의 부친은 아들이 종이 만드는 일을 하지 않길 바라셨습니다. 평생 고생한다며 만류하셨으나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시작한 종이 만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만류를 하였던 부친도 아들의 솜씨를 조용히 지켜본 후 결국 자신의 길을 걷게 하였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공문서 복원 사업으로 한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입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1970년대 들어서 양지가 보급되어 한지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고 한지 만드는 일도 침체되기 시작하여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이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장용훈 한지장은 음양지는 물론이고 보수지의 대가입니다. 오래된 작품의 손상 부위를 복원하기 위해 극도로 얇게 뜬 종이인 보수지 제작은 그만큼 뛰어난 기술이 필요합니다. 현재 십여 년 전 원인 모를 두통으로 일 년을 앓고 난 후 청력을 거의 잃었고 연로하여 기억도 많이 잃은 상태지만 기억을 잊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종이를 뜨는 방법입니다.

현재는 ‘장씨 가족이 종이 만드는 공방’이라는 이름 뜻의 <장지방>을 운영하며 선생의 장남인 장성우 전수자가 20년이 넘게 대를 이어 종이를 뜨고 있습니다. 많은 노력 끝에 명품 한지를 생산해 내어 내로라하는 국내외 화가들이 장지방 종이를 애용하고 브랜드화에도 성공하여 미국과 일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전통한지의 중요성과 더불어 한지 제작에 꼭 필요한 한지발을 제대로 갖추어 만들 수 있는 장인을 ‘한지발장’으로 지정하여 한지장, 한지공예 작가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한 무형문화재로 보존해오고 있습니다. 한지발은 본래 품질이 우수하고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한 좋은 한지를 잘 뜨기 위해 대나무와 말총을 이용하여 ‘종이뜨기 틀’을 제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한지에 신소재를 복합적으로 배합하여 실용성을 가미한 한지발을 ‘지사(紙絲)발(Paper Blind)’이라고 칭하기도 하며, 종이로 실을 꼬아 만드는 유사한 방식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전통적인 발의 장점을 살리고, 현대적인 색상과 기능을 보완하여 개발된 환경친화적 천연소재 제품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의 명맥을 이어온 한지발장이 제작하는 품목은 한지 외발, 한지 쌍발, 무늬발 등이고, 우리의 한지를 활성화시키는 데 있어 더 없이 중요한 것이 바로 한지발입니다. 특히 현재 일본식의 쌍발에 밀려서 우리의 전통한지 외발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곧 한지외발 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배근 한지발장

유배근 한지장은 1940년에 태어났으며, 전주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부친 유양수 님께 한지발을 제작하는 고유기술을 사사받았습니다. 전북공예품경진대회, 전승공예대전 등 다수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지발 전문 장인으로 남아있습니다.

한지발은 고유 한지를 뜨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가장 핵심적인 도구로써, 특히 한지발이 없으면 우리 전통 고유의 한지를 제대로 뜰 수 없다는 점이 매우 특별합니다. 유배근 한지발장은 대나무와 말총을 가공하는 복잡하고 세밀한 공정에 정통해 있어 한지발 제작기술 수준이 훌륭하다고 오랜 기간 동안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한지발을 엮기까지는 말총을 잇는 시간이 3일 이상 소요되고, 이렇게 오랜 기간 정성들여 한지발을 제작해야 면이 균일하게 고르고 매끄러운 명품종이가 탄생될 수 있다는 점을 늘 강조합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50년 이상 한지발을 제작해오는 유배근 한지발장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한지발 제작자이며 전통 한지발 기능 보유자로서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명인입니다. 유배근 명인은 전주에서 오랜 기간 동안 작업해오면서 전주의 명소 ‘한옥마을’에서 지역문화예술 축제 및 다양한 문화예술기관에서 한지발을 이용하여 손수 종이를 떠 보는 체험교육을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고유의 문화가 주는 소중함을 널리 전수하기 위해 꾸준히 정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