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대하여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을 아시나요?
바로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입니다. 폭은 6.6cm, 길이는 약 620cm이며 닥종이 12장을 이어 만든 두루마리 형태로 발견될 당시 비단보자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보자기는 그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식이 심해 있던 반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자그마치 천년을 뛰어넘은 기간 동안 보존되어 우리나라의 높은 인쇄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고유의 제조방식으로 만들어진 전통 종이인 한지(韓紙)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의 수명은 100년이라고 합니다. 자그마치 1200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우리 한지의 비밀! 지금부터 알아봅시다.
한지(韓紙)란, 우리나라 고유의 제조방식으로 만들어진 전통 종이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 한지라는 단어는 국가의 개념이 강조되는 시점인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종이에 대해서 먼저 알아볼까요 ?
종이는 가장 먼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요? 종이는 중국의 3대 발명품 중 하나이지요. 여기서 중국의 3대 발명품이란 바로 종이, 화약, 나침반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들이지요. 이처럼 종이는 중국에서 발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종이를 사용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러한 종이란 식물의 섬유를 물에 풀어서 평평하고 얇게 서로 엉기도록 하여 물을 빼고 말린 것을 말합니다. 기원전 105년경 중국 후한시대 궁중의 물자 조달 책임자였던 채륜이 종이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부터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채륜은 기술의 발명자라기보다는 완성자 또는 개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이가 없을 때에는 어디에 글을 쓰고 기록하였을까요? 이러한 종이가 서양에 전래되어 알려지게 된 건 이로부터 650년 쯤 후입니다. 종이를 사용하기 전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글씨를 썼으며, 유럽에서는 양피지나 밀랍판에 썼고,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Papyrus)에 글을 썼습니다. 파피루스는 지중해 연안의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로서 사람들은 파피루스 줄기를 길이 방향으로 가늘게 찢은 뒤 서로 엇갈리게 나란히 이어 붙여 종이처럼 사용했습니다. 종이를 영어로 페이퍼(Paper)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파피루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가 나무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무의 어떤 성분으로 종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 한번 살펴볼까요 ?
종이의 기본 원료는 식물성 섬유라고 불리는 셀룰로오스(Cellulose)입니다. 이러한 셀룰로오스를 가진 모든 식물은 종이의 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셀룰로오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원료입니다.
모든 종이는 이러한 셀룰로오스가 물속에서 수소와 만나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즉, 셀룰로오스를 이루는 성분인 탄소(Carbon)와 수소(Hydrogen) 그리고 산소(Oxygen)가 물을 이루는 산소와 수소와 만나 접착제 없이 수소 결합을 함으로써 서로 엉기고 설키면서 고체로 성질이 변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종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이 제조에 사용되는 셀룰로오스의 성분의 양에 따라서 종이의 강도, 질감, 색상, 흡수성 등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또 다른 식물 성분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리그닌(Lignin)은 섬유를 단단하게 만드는 접착제의 역할을 합니다. 종이가 시간이 오래 지나면 누런빛을 띠며 색이 변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리그닌 성분 때문입니다. 이처럼 리그닌이 많은 섬유로 종이를 만들게 되면 종이가 거칠어지고 빛에 약해 쉽게 색이 변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닥나무, 뽕나무 등은 리그닌이 매우 적어 종이의 질이 부드럽고 세월이 지나도 쉽게 색이 변하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지도 바로 이 리그닌 성분이 적은 닥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색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 종이의 원료와 제작원리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그렇다면 한지는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한지와 다른 나라의 종이들은 어떤 점이 다른지 한번 살펴봅시다.
한지란 우리나라 고유의 제조법으로 만든 전통 종이를 말합니다. 한지의 주원료는 닥나무입니다. 이 닥나무의 섬유는 다른 나무보다 무척 가늘고 길어 잘 엉기기 때문에 그물망처럼 조밀하고 일정하게 짜여진 종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닥나무의 섬유와 풀이나 접착제의 역할을 하는 재료(점제)인 닥풀, 그리고 이 닥을 삶을 때 사용하는 잿물의 상호 작용으로 섬유를 부드럽게 하고 강도가 높아 질기고 보존성이 좋은 천년을 견디는 종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지는 자연과 함께 숨을 쉬는 자연의 종이입니다. 그래서인지 건조할 때는 적당히 수분을 내뿜기도 하고 습할 때는 이를 빨아들여 습도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음을 막고 차단하기도 하며 보온의 효과도 있습니다. 또한 원료로 쓰인 닥섬유 자체에 빛 반사율이 높아 광택이 우수합니다. 또한, 원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자연스러운 구조로 섬유조직이 배열되기 때문에 공기가 잘 통하여 좋아 활용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연염료로 물이 잘 들기 때문에 모든 색상의 표현이 가능하여 아름다운 자연의 색을 만들어내기에 매우 좋습니다.
서양지(西洋紙), 즉 서양에서 들어온 종이 또는 서양식으로 만든 종이를 말합니다.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하고 쓰는 종이이기도 합니다. 유럽은 1850년 무렵부터 전통적인 종이 만드는 방법 대신 저렴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나무펄프(Wood pulp)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나무 펄프의 리그닌은 자외선에 노출되면 종이를 검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섬유소가 파괴되기 때문에 결합력이 약해져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무펄프로 만든 종이는 색상이 희고 빳빳할 뿐만 아니라 엉킨 섬유가 없기 때문에 겉 표면이 매우 균일하고 밀도가 높아 인쇄 시에 기계에서 우수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선지(宣紙)는 중국 안휘성 경현에서 만든 종이를 말합니다. 선지는 섬유질이 짧은 죽피, 마피, 청단피에서 뽑아낸 인피섬유와 볏짚이나 밀집 등을 발효시켜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약하고 질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색이 잘 변하지 않고 광택이 있으면서도 미끄럽지 않고 조직이 조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이 고르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글을 쓰면 글씨의 힘과 기교가 느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그림을 그리면 작품의 풍부한 느낌을 잘 담아내며 먹을 잘 흡수하고 번짐이 미묘하여 중국 서예와 회화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종이로 꼽힙니다.
일본의 종이는 우리나라 고구려의 담징이 제지법을 전해 주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식 제지 기계를 도입하면서 서양 종이와 구분하여 일본 전통 종이를 화지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화지의 주재료는 삼지닥나무로서 섬유 폭이 좁아 종이의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유연합니다. 일본화에 사용되는 화지는 습기에 강하고 표면에 코딩 처리를 하여 먹이나 채색이 스며들기보다 위에 얹히어 두께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화지의 성격은 일본 특유의 채색화를 형성하는데 좋은 조건이 되어 일본의 장식적이며 평면적인 미감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종이는 각 나라가 위치한 지역에서 가장 잘 자라는 식물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각 나라의 조건과 풍토의 맞는 종이를 만들어내고 그 용도와 가장 잘 맞을 때 좋은 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 우리의 전통 한지는 신라 시대 때부터 중국에서 ‘천하에 비할 수 없는 종이’로 알려져 너도 나도 구하려고 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기도 했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 한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살펴봅시다.